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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형호 유괴 살인사건

by 프로파일러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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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호 유괴 살인사건 

사건 발생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現 압구정현대14차아파트)에 살던 이형호 군은 1991년 1월 29일 저녁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모습이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그날 밤 11시, 이형호 군의 집으로 서울, 경기 말씨를 쓰는 30대 남자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으며, 범인은 형호를 데리고 있다. 이틀 뒤에 다시 전화할 테니 돈 70,000,000원과 카폰이 달린 자동차를 준비하고 있어라'라고 지시했다. 범인의 협박 전화는 44일 동안 60여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사건 경과


범인은 마치 각본이 있는 것처럼 철저하게 움직였다. 협박 전화를 처음 걸고 난 후, 이형호 군의 보호자가 경찰에 신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어 "서초경찰서 형사입니다. 거기 있는 형사들 좀 바꿔 주세요"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형사인 것처럼 연기를 했다. 당시 이형호의 보호자(의붓어머니)는 이미 경찰에 신고하였고 집에 강남경찰서 형사가 출동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강남경찰서 형사의 유도로 이형호의 의붓어머니가 "가정집에 무슨 형사가 있나요?"라고 말해 무사히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범인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경우를 대비해 치밀하게 행동했다. 이틀 뒤인 1월 31일,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의 그랜저 승용차에 설치된 카폰으로 연락하면서 서울 시내 곳곳으로 불러내 이우실로부터 돈을 받아내려 했다. 김포국제공항 국내선주차장 2구역에 차를 세우고 차 열쇠를 꽂아놓은 다음, 차 안에 돈을 놓고 나간 뒤 바로 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작 범인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날 밤 전화를 걸어 "왜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십니까? (자동차) 뒷좌석에 누가 타고 있었습니다"라는 변명을 했다.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가 잠복해 있었지만, 이우실의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 있었지 앞뒤 좌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범인이 현장에서 형사가 트렁크로 숨어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거나,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잠복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일부러 넘겨 짚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잠시 후 범인은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공중전화를 이용해 이우실의 카폰에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대한극장 앞으로 불러냈고, 인근 제과점인 태극당 건너편에 차를 세운 후 태극당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라는 지시를 했다. 하지만 당시 태극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이를 알아차린 범인은 다시 연락해 "제과점 문이 닫혔습니다. 근처에 치킨 센터는 열려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죠"라고 말해 지루한 이동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이번에는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범인은 약속 장소에 자신이 알고 있는 형사들이 두 명이나 와 있다며, 이형호의 의붓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누군가가 주변을 계속 얼쩡거리고 있네요.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속 잡아 떼실 건가요?"라고 협박했다.실제로 당시 상황 역시 약속 장소 주변에 형사 여러 명이 잠복한 상태였지만, 모두 일반인이나 상인 등으로 변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역시 범인이 넘겨 짚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형호의 의붓어머니는 범인의 집요한 추궁에 삼촌이 같이 나간 것 같다고 말했고, 결국 경찰이 개입했음을 반 시인하고 말았다. 다만 마지막 통화에서 범인이 남긴 말을 보면 당시 범인은 의붓어머니가 정말로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고 여긴 듯하다.

이에 범인은 직접 돈을 건네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은행 계좌를 개설해 돈을 받기로 한다.범인은 한일은행에 윤정수, 상업은행에 김주선이라는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한 뒤 유괴 7일째인 2월 4일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이형호의 의붓어머니에게 약속 장소로 차를 몰고 나오라고 지시했고, 버스정류장 옆 쓰레기통에 메모가 놓여있으니 그것을 보고 다음 메모가 놓여있는 장소로 이동하라고 지시하는, 이른바 무인 포스트 방식을 이용했다. 이렇게 해서 따라간 마지막 메모에는 계좌번호와 함께 돈을 입금시키라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범인은 자신이 개설한 두 은행에 2천만 원씩 총 4천만 원을 입금하라는 지시를 했고, 이우실은 경찰과 상의하여 한일은행에만 입금을 했다.

그리고 한일은행 전산센터에 형사들을 파견해 인출 여부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는데, 정작 범인은 뜬금없이 2월 13일 저녁 "아이에 대한 애착이 없군요. 형호가 죽기를 바라죠?"라는 협박을 했고 "88도로를 타고 가시다 보면 서울교라고 다리가 있습니다. 거기 밑에 철제 박스가 있고 메모를 돌로 눌러놨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인 줄 알고 잘 진행해 주십시오."라는 최후의 통첩을 했다. 메모의 종착점은 양화대교 인근 철제 박스였고, 이우실은 이곳에 가짜 돈이 든 봉지를 둔 채 떠났다. 주변에는 형사들이 잠복해 있었고, 잘하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이번에는 무전기로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철제 박스의 위치를 혼동하는 바람에 범인이 돈을 집어갈 동안 형사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날 밤 범인은 전화를 걸어 "가짜 돈이 잔뜩 섞여 있습니다. 형호를 되찾길 바라지 않는 것으로 알죠. 다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신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연락을 끊어 버렸다.

하지만 이우실은 범인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갈 것에 대비하여 한일은행에 입금되었던 돈을 상업은행 계좌로 송금했고, 드디어 2월 19일, 상업은행 상계동지점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인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은행원이 단말기에서 사고신고 계좌라는 문구를 보고 당황해하며 남자를 의심하자 발각된 것을 알아챘는지, 남자는 다급하게 은행원에게 통장을 빨리 달라고 했고, 잠시 후 나온 통장을 낚아채듯이 빼서 황급히 달아났으며, 당시 해당 지점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끝내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만다. 통장 개설 신청서와 메모지에는 지문이 전혀 없었고, 범인의 행방은 미궁 속에 빠져버렸다.

범인의 마지막 통화로부터 1개월이 지난 3월 13일, 한강공원 잠실지구 인근 터널(일명 토끼굴) 옆 배수로에서 어린이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당시 시체는 눈과 입에 테이프가 붙어있고 손발이 결박된 상태였다. 확인 결과 시체는 유괴된 이형호였고, 부검 결과 위에 남아있는 음식물이 실종 당일 친구네 집에서 먹은 음식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망 시점은 유괴된 직후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형호 군은 유괴 당일에 이미 사망하였으며 범인은 애당초 이형호를 살려서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돈만 가로챌 계획으로 44일간 피해 부모를 농간한 것이다. 유괴 당일에 살해해서 이미 아이가 죽은 상태에서도 뻔뻔스럽게 계속 금품 요구 및 협박 전화를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공개 수사로 전환
범인에 대해서는 상업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범인과 다소 길게 대화를 나눈 은행원의 기억을 토대로 몽타주가 만들어졌고, 그동안 이형호의 안전을 위해 비공개로 진행되던 수사는 3월 13일 이형호의 사체가 발견된 후 유괴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바뀜에 따라 공개 수사로 전환되었다. 전국에 몽타주를 지명수배한 뒤 여러 신고가 접수되었는데, (시체가 발견된 곳 바로 옆에 있는) 잠실주공1단지에서 이형호와 20대 남자를 봤다는 제보와 한강공원에서 이형호와 20대 남자를 봤다는 매점 상인들의 제보가 들어오면서 한때 수사에 활기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잠실주공1단지에 나타난 어린이와 청년은 사건과 관련 없는 일반 주민으로 확인되면서, 수사는 서서히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반전이 일어났는데, 범인의 목소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성문 분석을 한 결과 이형호의 친인척 중에서 1명과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 그는 이형호의 생모 쪽 사촌동생인 이상재(가명)이었으며 당시 만 29세였다.그는 이우실이 이혼할 당시 사촌 누나(이우실과 이혼한 아내)를 적극적으로 돕는 등, 이우실과는 사이가 굉장히 나빴던 데다 당시 무직 상태로 여기저기에 돈을 빌리고 다닐 정도로 자금 사정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범행 동기도 충분했다.

실제로 범인은 이형호의 친형까지 들먹이면서 협박해왔고, 그 외에도 이형호의 조부가 자산가이므로 돈을 충분히 줄 수 있지 않냐는 등의 온갖 집안 사정을 먼저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어린이 유괴 사건이 기승을 부렸기에, 어린이들에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낯선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하던 시기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사리분별이 어느 정도 가능한 9살의 이형호를 쉽게 데려갔으면서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인 이상재가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유괴된 당일의 행적도 이러한 의심을 키웠는데, 방과 후 놀다가 시간이 흘러 저녁 무렵이 되자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형호만은 유독 놀이터에 남아있었다. 이형호의 생전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친구의 증언으로는, 이형호에게 왜 집에 안 가냐고 물으니 "엄마한테 혼난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즉 이형호가 생모 쪽 친척인 이상재를 만나는 것에 대해 아버지와 계모의 눈치를 보아서 한 대답일 가능성이 높았고, 당시 한 청년이 놀이터에서 뒷모습만 보인채 계속 앉아있었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그가 곧 이형호의 행방을 캐내기 위한 감시자였을 가능성도 컸다.

여기에 더해, 범인이 개설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계좌의 예금주 이름 역시 이상재의 주변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경찰은 이상재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상재는 서울의 공중전화를 통해 협박 전화가 걸려온 당일 자신은 경상북도 경주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당시 사용한 고속도로 통행 영수증을 증거물로 제시하였으며, 추가로 경주에서 숙박했다는 여관 주인에게 이상재의 사진을 보여준 결과 당일 숙박했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오직 한 가지만 나온다는 성문[23]이 일치했던 분석 결과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던 경찰은 보강 수사에 들어갔다. 우선 이상재가 당일 경주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곳에서 서울에 있는 공범에게 전화를 걸고 이를 다시 이형호의 집에 연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상재가 대학에서 전기 통신을 전공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한 기술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다른 날에 대해서는 기억을 잘 못하는 반면 유독 사건 발생 당시 협박 전화가 처음 걸려왔을 시점에 대해서만 뚜렷이 기억하고 여러 물증까지 확보하고 있어 알리바이를 조작했다는 심증이 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가적으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이상재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리고 말았다. 후술하다시피 성문의 정확도가 매우 명확했기에 법정에서도 간접 증거로 이용되기도 하나, 성문은 지문처럼 99.99%의 정확도를 보장하지 못하기 틀릴 가능성도 있다는 점[24]이 주효했다.

참고로, 성문이 DNA나 지문처럼 개인에게 고유하기 때문에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가 전화를 건 인물을 이상재로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되며, 설령 그가 유괴를 직접적으로 저지르지 않았거나 인출을 시도한 인물이 아니고, 기타 알리바이가 모두 성립한다고 해도, 만약 그 성문이 이상재의 것이 확실하다면 그가 이 범죄에 가담한 것은 명백히 변함없는 사실이라는 반박이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모두 1990년대 초중반의 기술과 지식에 기초한 것이다.

일단, 2020년대 현재는 '성문이 한 개인의 고유한 생체 정보'라는 학설은 폐기된 상태다. 애초에 성문은 DNA, 지문, 홍채와 같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자료가 아니다. 즉, 성문은 그 자체로는 확보할 수 없고 녹음 테이프나 디지털 저장 매체와 같은 보조적인 매체의 도움을 받아야만 확보할 수 있는 자료인데, 이처럼 가공된 자료의 유일성을 논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쉽게 이야기해서 성문이 한 개인의 고유한 생체 정보인지를 명증하게 검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문을 기준으로 동일인 여부를 가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문이 96%의 정확도를 보인다는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 사이의 기술로 평가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과학적 분석 방법으로 산출한 수치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들어 음성과 음향을 다루는 전 과정이 디지털화되면서 매우 정밀한 성문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성문의 정확도는 과거보다 더 낮게 평가되고 있다. 즉, 도구의 발달에 따라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맹점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다양한 성문 중에서 서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식별해 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특정 성문들을 비교해 동일인이라는 것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범죄수사언어학을 비롯한 법음성(향)학계의 주류 학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21세기 들어서는 성문을 수사의 참고 자료 정도로만 취급하지 중요 범죄에 대한 형사 재판 법정에서 증거로는 결코 채택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당시 경검이 이상재를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현재 시점에서는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의 실책
이 사건을 담당한 강남경찰서는 범인을 검거할 결정적인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다. 바로 위에서 말한 양화대교 철제 박스의 위치를 혼동한 것 외에도 범인이 교보빌딩 앞으로 이우실을 불러냈을 때 인근 지하도를 나온 점퍼 차림의 20대 남자가 차를 유심히 살펴보자 이우실이 형사들에게 추적을 요구했는데, 경찰임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머뭇거리다가 범인을 놓치는 결정적 실책을 범했다.

뿐만 아니라 은행 계좌로 돈을 입금했을 때도 범죄에 이용된 것임을 밝히는 문구만 넣었을 뿐, 은행 직원이 주도면밀하게 대처할 만한 문구를 넣지 않는 바람에 범인이 그대로 달아나버리기도 했다. 더구나 이 실책을 은행 직원에게 떠넘겼다고 한다. 또 시체 발견 직후 부검 결과 위에 남아있던 음식물이 잡곡과 나물이라는 것에 착안, 송파 및 강남 지역에 위치한 보리밥 식당을 돌며 이형호의 행적을 수사했는데, 문제는 이형호가 실종 당일 친구 집에서 먹었던 것이 바로 잡곡밥과 나물이었다는 것이다. 행적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괜히 헛다리만 짚은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저러한 상황을 상부에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망신을 샀다는 것이다.



몇 차례 굵직한 제보가 접수되면서 사건이 해결될 듯 말 듯 했지만,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이 사건은 2006년 1월 28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그러나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방영된 내용이다.

1992년 3월 31일 첫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 1회 방송에서는 성문 분석 결과 범인이 1명으로 추정되었지만, 양화대교 철제 박스에서의 상황을 보면 석연치 않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철제 박스 위의 돈을 가져갈 때 범인이 1명이라면 스스로 운전을 하다가 차를 세우고 가져갈 수밖에 없는데, 사건 당시에는 정차한 차량이 한 대도 없었던 상황에서 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특히 올림픽대로는 갓길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갑자기 차량을 정차시킬 경우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더 범인이 1명이라는 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당시 방송분에서는 범인이 2명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즉 범인 2명 중 1명은 운전을 하고 나머지 1명이 조수석에 앉아있다가 팔을 길게 뻗어 돈을 낚아채갔다는 추측이다.

이것은 수사 과정에서도 인지된 부분이었으나, 성문 분석 결과와 일치하지가 않아 수사 혼선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4월 21일 다시 이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성문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음을 밝혀냈고, 결국 이 사건의 범인이 2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2011년 5월 21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800회를 맞이하며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범인이 최소 3명 이상으로 전화를 걸어온 범인 외에 공범이 있고 이 사건을 주도한 장본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해당 방송분에서도 성문 분석을 여러 전문가에게 의뢰했는데, 전화 통화 목소리는 모두 1명의 동일한 목소리라는 주장을 전했다[26]. 일부 다르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기는 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두꺼운 마스크를 쓰는 등의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졌으므로 목소리가 다르게 들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주범이 직접 전화를 걸지 않고 타인을 시켜 협박 전화를 건 사실로 미루어볼 때 주범은 이형호와 면식이 있는 사이이며, 형호의 집안에 대해 정확한 지식은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 은행원의 증언에 따라 만들어진 몽타주 속 인물과 실제 협박 전화를 건 인물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목소리를 통해 범인의 하관을 분석한 결과 전화를 건 범인은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가 짧고 좌우로 잘 발달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반면 몽타주 속 인물은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가 길고 계란형 얼굴이었다. 음성 분석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전화를 건 협박범은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데, 몽타주 속 인물의 하관 구조로는 그렇게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범인이 '저희' 혹은 '우리'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한 점, 또한 앞서 말한 무인 포스트 방식에서 타인에게 메모지를 들키지 않고 오로지 이우실만이 메모지를 발견하게 하려면 시간에 맞춰 메모지를 배치하는 역할의 인물이 따로 있어야 앞뒤가 맞는다는 점, 이우실의 동선을 파악하는 감시 역할의 인물도 따로 있어야 범인과의 접선 과정이 제대로 진행된다는 점, 그 외 목소리 분석을 통한 심리 추정[28] 등이 근거로 제기되었다. 종합해보자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결론만 내지 않았을 뿐이지, 최소한 이상재가 연루되었음을 은연 중에 암시한걸로 보인다.

사건의 규모나 내용 면에서 다르기는 하나, 사건의 수법으로만 놓고 본다면 이 사건이 일어나기 7년 전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은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에서 범인들이 쓴 수법이 이 사건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는 점, 무인 포스트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이 유사한데, 범인이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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