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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by 프로파일러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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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612일 오전 845분경,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미성아파트 7층에서 흰 연기가 발생했다. 이후 910분경, 경비가 화재가 난 것을 알아채고 119에 신고했다. 오전 920분경, 소방관들이 도착하여 10여 분 만에 화재를 진화했다. 화재는 안방의 장롱에서 시작되었으며, 장롱과 일부 옷, 커튼과 벽지 일부만을 태웠다.

 

화재를 모두 진압한 후,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외과의사인 이도행(이하 L)[1]의 부인 최수희(이하 C, 치과의사)[2]와 딸 이화영[3]이 사망한 채로 욕조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남편인 외과의사 L은 개인 병원을 개원하는 날이어서 외출한 상태였다.

부인 C와 딸은 물이 담긴 목욕탕 욕조에서 숨져 있었다. C는 발견 당시 상의가 벗겨지고 팬티가 내려가 있는 상태였으며, 목에는 교살(絞殺)의 흔적이 나타났다. 그리고 목, 팔 등에는 미세한 찰과상이 발견되었다. 딸 역시 끈으로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욕조의 물에 잠겨 있었다. 이로 볼 때 타살임이 명백하였으며, 화재 역시 장롱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아 명백한 방화였다. 이에 수사팀은 누군가 살인을 저지른 후, 증거 인멸을 위해 불을 질렀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이한 점은, 현관문이 잠겨있는 상태였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의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집 안의 현금과 귀중품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집을 뒤진 흔적도 없었다. 따라서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피해자들과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들을 수사한 결과, 그들은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다. C와 내연관계였던 인테리어 업자 J가 있었으나, 그는 사건 발생 시간에 다른 지역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5] 자연스럽게 의심의 시선은 남편 L에게 쏠리게 되었다.[6]

4. L의 알리바이

L은 자신이 오전 7시에 집을 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녀는 살아 있었으며, 둘의 배웅을 받으면서 병원에 출근했다고 증언한다. L이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자신의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였다.

 

5. 핵심 쟁점

따라서 이 사건의 최대의 쟁점은 모녀가 사망한 시간이다. L이 출근한 오전 7시 이전에 모녀가 사망하였다면 L이 범인으로 확정되고, 그 이후에 사망하였다면 L은 범인이 아님이 명확해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과학수사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1995년 시점이라 아래와 같은 여러 불명확한 논란이 있었다.

 

5.1. L이 범인이라는 증거

 

5.1.1. 시반(屍斑)의 형성

모녀에 대한 검안(檢案)이 이루어진 시간은 오전 1130분이었다. 검안 당시, C에게는 우측 대퇴부를 중심으로 하여 양측성 시반(屍斑)[7]이 형성되어 있었다. 양측성 시반이 형성되려면 사후 6~8시간이 경과하여야 한다. 이를 고려할 때, 모녀의 사망 추정 시간은 오전 330~530분이 된다.

 

5.1.2. 시강(屍剛)의 진행

 

지문을 뜨기 위해 손가락을 펼치자, 이미 손가락에 시강(屍剛)[8]이 진행된 상태였다. 지관절(指關節)에 시강이 진행되려면 사후 6~12시간이 지나야 한다. 이 경우, 모녀의 사망 추정 시간은 전날 오후 1130~사건 당일 오전 530분 사이가 된다. 시반과 시강에 대해서는 이곳을 참조.

 

5.1.3. C의 소화상태

 

C의 위에서는 소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밥이 350g 정도 있었으며, 위의 내용물에서 사건 당일 전날 저녁에 먹었다는 미역국의 미역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L이 아침에 먹었다고 주장한 콩나물국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잔존물의 상태로 미루어보아, 저녁을 먹은 지는 시간이 조금 되었으나 아침을 먹기 전에 살해되었으며, 사망 시간은 611일 오후 1130분경부터 612일 오전 4시 사이로 추정되었다.

 

5.1.4. 3자의 침입이 불가능

당시 집 안에는 제 3자의 침입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집에서 혼란스럽게 다닌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집의 구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파악하였다.

 

하지만 살인에 이용된 도구를 경찰은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고, 범인의 지문이나 머리카락 등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따라서 간접 증거와 정황만으로 재판을 하였으며, 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게 된다.

 

5.1.5. 거짓말 탐지기 거짓 반응

경찰의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 L은 전체적으로 양성 반응이 나왔다. 다만 변호인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살해 시각, 장소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L이 진범 여부와 상관없이 선입견이 박혀 특정 질문에 이상 반응을 보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1심에서는 증거로 인정받았으나, 이후 직접적인 증거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5.1.6. 불을 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

범인(혹은 범인들)은 여자를 강간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강간범죄인 것처럼 옷을 벗겨놓고, 방해자가 될 수 있는 아이도 죽이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 증거가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 물에 시신을 담그고 굳이 시신도 아닌 안방에 불까지 질러 현장 증거를 없애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리고 현장이 발견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일부러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관문을 잠궜다. 대범한 범죄를 저지르고 빨리 도망가려하기보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 심리가 엿보인다. 그것은 증거가 발견되면 범인이 곧바로 특정될 수 있는 사람이 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5.2. L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

5.2.1. 사망 추정 시간의 문제

시반(屍斑)과 시강(屍剛)으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것은 오차 범위가 굉장히 넓다. 사람에 따라 시반의 발생 시점과 정도가 다르다. 최초 검안 시에는 C의 시신에서 목, 가슴, 배에도 시반이 관찰되었다. 하지만 부검을 하는 시점에서는 우측 대퇴부 이외의 시반이 모두 소실되었다. 우측 대퇴부의 경우, 그녀가 팬티를 입고 있었기에 압력으로 인해 시반이 먼저 형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른 시반이 모두 소멸한 것으로 볼 때, 시반이 형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L이 집을 나간 이후인 오전 740분경까지 사망 추정 시간이 늘어난다.

 

이는 시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온도가 높을 경우, 조기 강직이 나타난다. 이 사건에서는 욕조 물의 온도가 얼마나 뜨거운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아 시강의 원인이 불분명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시강이 나타난 것인지, 혹은 용의자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고의적으로 급속한 시강을 유도했는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시강으로 사망 시간을 추정한 것 역시 반박되었다.

 

게다가 당시 욕조 물의 온도를 경찰이 처음 현장 조사를 할 때 측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9] 향후 이것을 지적받자, 당시 수사했던 경찰의 손등에 온도별로 물방울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이 온도가 맞습니까?"라는 식으로 증언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5.2.2. 화재의 발생 시간

화재 신고 시간은 오전 845분경이었다. 따라서 화재는 그 이전에 발생하였을 것이다. 문제는 몇 시에 불씨가 옮겨 붙어 밖에서 화재가 났음을 알아챌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변호인 측은 1,800만 원짜리 아파트 모형으로 운동장에서 화재 실험을 진행하여, 만약 장롱에 불이 났다고 하더라도 5~6분이 지나면 외부에서 연기를 인지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이 주장에 따르면, 830분 전후에 누군가가 방화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5.2.3. C의 소화상태

C가 아침 식사를 할 때, L과 달리 미역국을 먹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 평소 C가 아침을 잘 챙겨먹지 않았기 때문에, 공복 상태여서 콩나물이 발견되지 않았을 수 있다. 전자레인지에서는 C가 아침 대용으로 먹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약이 발견되었다.

 

5.2.4. 콘택트 렌즈

C는 사망 당시 렌즈를 낀 상태였다. C의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C는 평소 자기 전에 렌즈를 빼고,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을 한 이후 다시 렌즈를 착용하였다고 한다. C가 렌즈를 낀 상태에서 죽었다는 것은, 자기 전에 사망했거나 혹은 일어나서 렌즈를 낀 이후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자기 전 그녀가 사망했다면, 몸에 더 많은 시반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일어난 이후에 죽었으며, L이 출근하고 난 이후 자신도 출근 준비를 하는 도중에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

 

6. 기타 정황

기타 정황들은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기에,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하자.

6.1. C의 외도

당시 C에게는 내연남이 있었다. C1989년에 L과 결혼하였으나, C1992년에 알게 된 인테리어 업자 J와 사건 직전까지 불륜 행각을 벌였다. C는 자신의 병원 진료실 안에서까지 J와 관계를 가졌다. 이는 차후 C의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에 의해 밝혀졌다.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C의 일기장에서는, 'L과 잠자리를 하면서도 J가 생각났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만약 L이 이를 알았더라면, 살해의 동기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LC의 외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LJ를 최초로 본 시간은 사건 발생 한 달 전이었으며, 당시에도 그냥 아내의 병문안을 온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C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아서, C가 먹던 한약은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해서 먹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6.2. 가정 불화

수사팀은 C가 외도를 저지른 것뿐 아니라, L이 장모의 집안과 사이가 안 좋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모는 L을 구박하였지만, L은 성격이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화를 억누르다가, 결국 살인으로 이를 표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L은 이 주장을 일축한다. 둘 사이에서 불화는 잦지 않았으며, 사건 발생 2주 전에는 온 가족이 장모를 모시고 괌에 여행을 다녀왔다고 증언한다.

 

다만 평소에 사이가 안 좋던 상태에서 같이 여행을 갔다가 오히려 갈등이 더 커져서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이 경우는 오히려 여행이 범행의 도화선이 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커플이 여행을 갔다가, 여행 중에 싸우거나 여행 직후 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유명한 수지 김 사건 역시 부부가 홍콩에서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해했던 사건이었다. 또한 만약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고 계획적인 범행이라면, 오히려 알리바이 용도로 계획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6.3. 위험한 독신녀?

당시 집을 수사하던 수사관들은 L의 트레이닝복 바지에서 쪽지를 발견한다. 여기에는 수많은 영화 제목이 적혀 있었는데, 1992년에 개봉했던 위험한 독신녀를 비롯한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있었다. 이에 책임자 Y는 목록에 적혀 있는 영화를 직접 구해서 본다. 이중 한 영화에는, 극중 여자 범인이 남성을 죽여 욕조에 시신을 담그는 장면이 등장하였다.

 

이에 YL에게 그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L은 부정한다. YL이 공중보건의로 근무하였던 강릉에 수사팀을 급파하여, L이 해당 비디오를 대여했는지 확인한다. 그 결과, L1994228일에 해당 비디오를 빌려, 32일 반납했다는 것을 알아낸다. 같은 해 1026, 또 다른 대여점에서 이를 빌린 후, 한참 뒤에야 연체료를 물며 이를 반납한 정황이 드러난다. 하지만 L은 끝까지 자신은 그 영화에 대해 모른다고 주장하였다.

 

7. 판결

19962, 1심에서는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9, 2심에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에 19981113,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유죄의 취지로 파기환송을 한다. 하지만 20012, 고등법원은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를 선언. 20032월 대법원의 재상고심에서는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아래는 판결문을 그대로 발췌하였다.

피고인의 범행동기를 쉽게 인정할 수 없다는 점, 사망 시각 또는 사망 시간대의 추정에 관한 검찰 제출의 사체 현상에 관한 각 증거에 유죄의 증거 가치를 부여하기에는 부족한 점, 이 사건 화재가 피고인의 출근 이후 발생하였다고 보이는 점, 피고인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거나 거짓으로 보이는 일부 내용은 유죄의 증거로까지 인정하기에는 부족한 점, 그리고 오히려 사망인의 콘택트 렌즈, 한약봉지 관련 내용 등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보이는 정황도 상당 부분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위 유죄의 각 정황만으로는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하기에 의문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제3자의 범행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할 것이므로, 결국 여러 가지 유죄의 간접사실 내지 정황을 인정할 수 있는 간접증거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 종합적 증명력이 위 공소사실을 진정한 것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이 인정할 정도에 이르렀다고는 볼 수 없다.

 

8.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경찰은 사건의 초기 정보 수집 과정에서 많은 허점을 보였다. 발견 당시 사체와 욕조 물의 온도를 재는 것조차 시행하지 않아, 사망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놓쳤다.[10] 그리고 사건 초기에 가까운 사람이 살해했다고 단정하여 수사 범위를 가까운 인물들로 한정하여, 중요할 수도 있는 다른 증거 수집을 소홀히 하였다. 예를 들어, 검찰은 C를 살해한 범행 도구로 아파트 베란다의 커튼 끈을 잘라낸 것을 지적했고, 두 살 난 딸을 살해한 도구는 '어떤 줄' 또는 '종류 미상의 가는 줄'이라고만 설명할 정도로 소홀히 했다. 증거가 없는 이 주장은 재판 과정에서 모두 인정되지 않았고, 딸을 살해한 도구는 나중에 외과용 실이라고 주장했다가, 이후에는 치실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파기환송심에서, 검사 측은 화재 발생에 관한 내용에서 불을 조그맣게 피워놓아 지연 화재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 피고 측과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해외의 화재 전문가들에게 검찰의 주장이 가능한 것인지 의뢰하는 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도착했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직접 실험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1999년에 용인에서 MBC PD수첩제작진이 참여한 상황에서 실험을 하였는데, 실험을 개시하고 3분 만에 큰 불로 번지는 것이 증명되었다. 당시 화재 전문가들의 의견은 "지연 화재라는 것은 없다"였는데, 이것이 실험으로 증명된 것. 이 실험 결과를 통해 파기환송심 당시, 피고인 L이 모녀를 살해하고 지연 화재를 일으켜 화재가 자신의 출근 이후에 번지게 하고 현장에서 도주했다는 검찰 측의 주장은 부정되었다.

 

검찰은 자신들의 추정을 확신하고 기소했을 테지만, 간단히 논파되는 허점 투성이의 추정이 너무 많았고, 그 추정들의 근거들 중 많은 부분들은 피고인 L에게 유리하게도 해석될 수 있는 등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검찰은 패배하였으며 결국 진범을 놓친 결과가 되고 말았다(진범이 L이라고 단정짓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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